요한묵시록에 나오는 '붉은 용'과 '검은 짐승'에 관한 성모님 메시지
"지극히 거룩하신 성삼께서 원하신 그곳에 내가 있음을 (사람들이 그대로) 인정하기 전에는, 공동 구속자이며
은총의 보편적 중재자인 어머니로서의 내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 나의 힘을 완전히 다 쓰지는 못한다.
이 때문에, 나와 내 원수 사이의 전투가 결정적 국면에 접어들수록, 원수가 갖가지 수단을 동원하여 너희 천상 엄마
의 사명을 흐리게 하려고 애써 온 것이다.
세상 지배에 성공하기 위해서 붉은 '용'은 우선 태양을 입은 '여인'부터 박해해 왔다.
또한 '뱀'은 입으로 강물처럼 엄청난 물을 토해 내어, '여인'을 가라앉혀 휩쓸어 버리려 해왔다.(*묵시 12.15참조)
강물처럼 엄청난 이 물이야말로, (이른바) 새로운 신학 이론이라는 것의 총체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이 이론에 의거하여 지존하신 성삼께서 정해 주신 위치로부터 너희 천상 어머니를 끌어내리려는 시도가 자행되었
으니, 허다한 내 자녀들의 영혼과 생활과 신심에서 나의 위치를 흐리게 하고, 심지어 내 주님께서 나를 단장해 주신
몇몇 특권까지도 부정할 지경에 이르게 했다.
'큰 독수리의 날개'를 받은 '여인'은 강물처럼 엄청난 이 물을 피해서 광야로 날아가, 거기서 자신의 처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묵시 12.14참조)
숨어 있고 고요하고 멀리 떨어져 있고 물이 없는 처소가 아니라면, 이 광야(의 의미)가 대체 무엇이겠느냐?
숨어 있고 고요하고, 너무도 많은 투쟁과 상처로 말미암아 물이 없어진 처소, '여인'이 이제 자신이 머물 곳으로
발견한 이 처소가 바로, 티없는 내 성심에 자신을 봉헌한, 내 사랑하는 아들들의 영혼과 마음인 것이다...
아들들아, 은총의 중재자요 공동 구속자인 어머니로서의 내 힘찬 활동으로 변모될 수 있도록, 너희 자신을 내게
맡겨 다오. 두려워 하지 말지니, 너희 마음의 광야를 나의 피난처와 영원한 거처로 삼은 까닭이다."
이제 너희는 '붉은 용', 즉 마르크스적 무신론이 온 세상에 확산되어, 영혼들을 더욱 휩쓸어 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용이 과연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유혹하여 (땅으로) 내던지고 있다.
내 가련한 사제들아, 그 별들, 교회라는 하늘의 그 별들이 바로 '목자'인 너희들이다...
티없는 내 성심에 너희 자신을 봉헌하여라. 내 티없는 성심에 자신을 봉헌하는 이들에게는 나는 다시 '구원'을 약속
한다. 오류에 물들지 않게 하는 현세의 안전과 영원한 구원을 약속한다.
이 엄마의 특별한 중재를 통해 너희가 그것을 얻게 되리라.
그렇게 나는 너희가 사탄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 주겠고, 너희를 보호하고 지키고 위로하며 굳세게 해 주겠다."
거대한 '붉은 용'은 하느님을 부인하고 고집스럽게 배척하는 오류를 곳곳에 퍼뜨린 무신론적 공산주의이다.
거대한 '붉은 용'은 마르크스적 공산주의이니, 이는 열 개의 뿔과 일곱 개의 머리를 가진 짐승(*묵시 13, 1참조)이다;
열 개의 뿔은 인류로 하여금 하느님의 십계명에 불복하도록 하려고 도구로 사용하는 (대중) 전달 매체들의 힘이요,
권세와 왕권의 상징인 왕관을 각각 쓰고 앉아서 그 이데올로기의 힘과 정치적 군사적 세력으로 지배하고 있는 나라
들을 가리킨다.
그 '용'의 거대함은 무신론적 공산주의가 반대를 받음 없이 점령한 영토의 거대함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그것의 색은 붉은 색이니, 수많은 정복의 도구로 피와 전쟁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거대한 '붉은 용'은 이 세기에 걸쳐 이론적 실천적 무신론이라는 오류로 인류정복에 성공을 거두어 왔고,
지금에 와서는 세상 모든 나라에 유혹의 손길을 뻗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하느님을 배제한 새 문명-물질주의적이고 이기적이고 쾌락주의적이고 메마르고 냉혹한 새 문명을 이룩
하는데 성공했으니, 이는 그 자체 안에 타락과 죽음의 씨를 품고 있는 문명이다.
거대한 '붉은 용'은 성삼위 하느님의 지배와 그분의 영광으로부터 온 인류를 탈취하여,
성부께서 당신 영광을 위해 성자를 통해 창안하신 계획의 완전한 실현을 저지하려는 악마적인 임무를 띠고 있다."
(1989년 5월 14일)
내 티없는 성심은 오늘날 특히, 거대한 "붉은 용'의 추종자들과 '태양을 입은 여인'을 따르는 이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전투에서 확실한 승리의 표징이다. 이 가공할 전투에서 '용'을 원조하려고 바다에서 올라오는 것이 바로,
표범 같이 생긴 짐승(*묵시 13, 1-2참조)이다.
'붉은 용'이 마르크스의 무신론이라면 이 '검은 짐승'은 프리메이슨(*반교회 비밀결사)이다.
'용'은 (외부로) 드러나게 자신의 권세를 과시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검은 '짐승'은 눈에 띠지 않게 몸을 숨기고
도처에 파고드는 방식으로 암암리에 활동한다.
발은 곰의 발과 같고 입은 사자의 입과 같은 이 짐승은 사회 홍보 수단, 곧 선전을 통하여, 어디서나 간교하게 활동하고 있다. 일곱 개의 머리는 프리메이슨의 다양한 롯지(*프리메이슨의 지부 집회소 및 그 구성원들)들을 가리키는데, 이것이 곳곳에서 교활하고 음험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 검은 짐승은 또한 열 개의 뿔을 가지고 있고 그 뿔마다 주권과 왕권의 표상인 관이 씌워져 있다.(*묵시 13,1)
열 개의 뿔로 프리메이슨이 온 세상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것이다.
성서적 세계에서 뿔은 언제나 사람의 목소리를 키우는 확성기로 사용되었다. 그 목소리를 더 잘 알아듣게 하기 위
한 방편, 다시 말해 강력한 의사전달 수단이었다.
이런 이유로 하느님께서는 열 개의 뿔로써 당신 '뜻'을 백성에게 알리셨다. 열 개의 뿔(나팔 소리를) 통해 그분의 '법', 즉 십계명을 선포하신 것이다. 이를 받아들여 지키는 사람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길, 기쁨과 평화의 길을
걷는 삶을 살게 된다.
성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당신 성자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성자께서 이루신 '구원'(사업)에 참여한다.
예수님은 '갈바리아'에서 완성하신 그분의 '희생 제사'로 우리에게 얻어 주신 '은총'을 통해, 다름아닌 하느님의
생명을 영혼들에게 주시는 것이다...
(요컨대) 주님께서는 십계명으로 당신 '법'을 주셨고, 프리메이슨은 스스로 지닌 열 개의 뿔의 권세로 하느님의
그 '법'과는 정반대인 법을 어느 곳에나 두루 퍼뜨리는 것이다." ( 1989년 6월 3일)
"사랑하는 아들들아, 이제 너희는 '태양을 입은 여인'인 너희 '천상 엄마'의 계획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자신의 군대를 거느리고 모든 악의 세력에 대항해서 대전투를 벌이고 있는 이 엄마의 계획 말이다.
그 목적은, 나의 큰 승리를 통해,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 하느님께 완전한 영광을 돌려 드리는데 있다.
작은 아들들아, 나와 함께, 온 인류로 하여금 하느님을 거역하게 하려 드는 '용'과 싸우자꾸나.
작은 아들들아, 나와 함께, 영혼들을 멸망에로 유인하고자 하는 '검은 짐승'인 프리메이슨과 싸우자꾸나.
작은 아들들아, 나와 함께, '어린 양처럼 생긴 짐승'인 교회 프리메이슨과 싸우자꾸나.
이것이 교회 생활 내부에 파고들어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를 파괴하려 든다.
이 목적을 달성하려고 새로운 우상, 즉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교회'를 세우려고 하는 것이다.
-교회 프리메이슨은 프리메이슨의 다양한 롯지로부터 명령과 권력을 받아 모든 사람을 이 비밀 결사의 단원으로
끌어넣으려고 암암리에 활동한다. 그래서 야심을 품고 있는 자들에게는 손쉬운 출세 가능성을 부추기고,
돈에 목마른 자들에게는 재물을 듬뿍 뿌리며 유혹한다.
(또한) 그들과 한패인 자들에 대해서는 다른 이들을 뛰어넘어 가장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도록 술수를 쓰지만,
그들의 계획에 동조하지 않는 모든 사람에 대해서는 음험하면서도 여지없는 방식으로 뒷전으로 밀어내고 만다.
과연, '어린 양처럼 생긴 짐승'은 첫째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짐승 앞에서 행사하고,
땅과 땅 위에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첫째 짐승을 경배하게 한다. 교회 프리메이슨은 그 짐승을 위해
우상을 세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그 우상을 경배하게 한다.(*묵시 13,14-15)
그러나 주님의 거룩한 법 중 첫째 계명에 의하면, 오로지 하느님께만 엎드려 경배해야 한다.
어떤 형태의 것이든 예배는 오로지 하느님께만 드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하느님' 자리에 강하고 힘있고 지배력 있는 '우상'을 대치한다.
어찌나 권세 있는 우상인지, 그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는 누구든 죽임을 당하게 할 정도이다.
또한,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이나 모두 그들의 오른손이나 이마에 낙인을 받게 할
만큼 힘센 우상이어서, 그 낙인으로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숫자를 몸에 지니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물건을)
사거나 팔거나 하지 못하게 한다.
누구에서든지 섬김과 경배를 받도록 하기 위해서 세워진 이 거대한 우상이야말로, 내가 지난 번 메시지에서 이미
밝혀 주었듯이.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교회'이다. 하지만, 그것의 이름은 무엇이겠느냐?
묵시록 13장에 이렇게 쓰여 있다; '바로 여기에 지혜가 있어야 한다. 지각이 있는 그 사람은 그 짐승의 숫자를 풀이
해 보라: 그것은 어떤 사람의 이름을 표시하는 숫자이니 그 수는 666이다.'
지성이 하느님 지혜의 빛에 의해 비추임을 받으면 666이란 수로부터 한 인간의 이름을 알아낼 수 있다.
이 수가 가리키는 이름은 바로 '반그리스도'이다.
오래된 뱀, 악마 또는 '사탄', '붉은 용'(으로도 불리는) 루치펠이 이 마지막 시대의 반그리스도이다.
요한 사도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이심을 고백하지 않는 영은 모두 반그리스도(의 영)라고 단언
(*요한 4,3)했거니와, (어린 양처럼 생긴 짐승이)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절하게 하려고 세운 (첫째) 짐승의 우상
이야말로 반그리스도(의 우상)이다.
이제, 그것의 숫자 666을 풀이해 보아라. 그러면 그 수가 어떻게 하여 한 인간의 이름을 가리키는지를 알 수 있다.
333이란 수는 '(하느님의) 신성'을 지칭한다. 루치펠은 하느님보다 더 높아지고자 하는 교만 때문에 하느님께 반기
를 들었다. 333은 하느님의 신비를 가리키고 그분보다 더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666이라는 표시를 지니기에,
이 수는 루치펠, 곧 사탄의 이름을 가리킨다.
333은 첫째, 하느님의 단일성의 신비를 표현하고,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위격 안에 결합된 신성과 인성이라
는 두 본성을 지칭하고, 셋째, '하느님의 세 위격'의 신비, 즉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신비를 가리킨다.
따라서 첫째 둘째 셋째로 표현된 이 신비들은 가톨릭 신앙의 본원적 신비이니, (바꾸어 말하면 다음과 같다.)
1) 하느님의 유일성과 삼위일체
2)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 수난, 죽음, 그리고 부활
333은 (이와 같이 '하느님의) 신성'을 가리키는 숫자이고, 하느님보다 높아지고자 한 자는 666이란 숫자로 지정된다.
666은 그 자체로 서기 666년을 가리킨다. 역사상 이 시기에, 하느님의 삼위일체의 신비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이슬람교라는 현상을 통해, '반그리스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슬람교는 무력을 휘둘러 옛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모조리 파괴하고, 어디랄 것 없이 도처를 쑥밭으로 만들면서
유럽을 침공했다. 그것이 '그리스도 세계' 전체를 다 파괴할 수 없었던 것은, 오로지 '교황'의 줄기찬 간청을 들은
이 어머니의 특별한 중재 때문이었다.
666은 그 배수로 서기 1332년을 가리킨다. 역사상 이 시기에 '반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신앙을
근본적으로 공격함으로써 그 모습을 드러냈다.
오직 과학과 이성에만 가치를 부여하는 철학자들을 통해, 인간 이성을 진리에 대한 유일한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점차로 (퍼지게) 되었고, 현세기까지 이어진 큰 철학적 오류가 거기서 발생한 것이다.
이성을 진리에 대한 유일한 (판단) 기준으로 (여기며) 그 중요성을 과장한 나머지, 필연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신앙의 파괴 라는 결과를 가져왔으니, 과연 프로테스탄트적 개혁은 그것과 아울러 신적 '계시'의 원천인
(교회의) '전승'을 배척하였고 '성서'만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렇게 수용된 성서마저 (단지) 이성으로 해석되는 (운명을) 겪어야 했고, 교계제도적 교회- 그리스도께서
신앙의 보고를 보존하도록 맡기신 교회- 의 진정한 '교도권' 역시 완강한 배척을 받게 되었다.
(더욱이) 누구나 '성서'를 읽고 자기식으로 자유롭게 해석하며 이해하게 함으로써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신앙이
파괴되었다. (이와 같이) 역사상 이 시기에 '반그리스도'가 한 일이 바로 교회 분열이었다.
그 필연적인 결과로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참 신앙이 점차 유실되어 여러 갈래의 새로운 그리스도교 신앙고백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666은 그 세 배의 수로 서기 1998년을 가리킨다. 역사상 이 시기에 프리메이슨은 교회 프리메이슨의 협력
으로 그 자체의 큰 계획을 성공적으로 달성할 터인데, 그것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를 대신하는 우상, 즉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교회'를 세운다는 계획이다.
그리하여 '첫째 짐승'을 위해 세워진 우상을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경배하게 할 것이고, (물건을)
사거나 팔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낙인을 받게 할 것이니, 그것은 바로 반그리스도의 낙인이다.
그러기에 너희는 정화와 대환난과 배교의 극점에 이르른 것이다. 배교가 일반화 될 터인즉, 거의 모든 사람이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교회를 따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문이 열리고, 바로 반그리스도의 화신인 인간이 나타날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들아, 그래서 나는 너희가 살고 있는 시대를 가리키는 '묵시록'의 여러 페이지들에 관해 너희를 깨우
쳐 주고 싶다. 너희 '천상' 엄마와 사납게 날뛰는 모든 악의 세력 사이의 대전투가 가장 고통스럽고 결정적인 국면
을 맞을 시기를 너희가 나와 함께 대비하게 하려는 것이다.
용기를 내어라. 내 작은 아들들아, (부디) 굳건한 사람들이 되어라.
이 어려운 시기의 너희 사명은 적의와 투쟁과 박해를 감내하면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에 충실히 남아 있는 것
이다. 너희는 '반그리스도'의 막강한 세력과 맞설 임무를 띠고 싸워 결국은 승리를 거둘, 작은 양떼에 속하는 소중한 사람들이다. 나는 너희 모두를 기르고 보호하며 축복한다." ( 1989년 6월 17일)
-곱비 신부님의 묵시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