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글/프리메이슨

달러패권의 역사

목나무잎새 2010. 10. 28. 19:21

e Endangered US Dollar

 

Richard Heinberg, www.museletter.com

 

To preserve our independence, we must not let our rulers load us with perpetual debt. We must make our election between economy and liberty, or profusion and servitude.

- Thomas Jefferson

For decades the US dollar has served as the world's default currency. The phrase "sound as a dollar" has expressed the faith and confidence of generations, not only of Americans, but people worldwide.

 

That situation is coming to end, and the consequences will be far-reaching.

A Brief History of Money

 

과거의 많은 상대적으로 복잡한 사회들(고대 이집트나 잉카 문명 같은 )조차 돈 없이 지냈다. 그러나 이 새로운 도구는 그것이 나타난 곳에서는 어디든지 교역을 용이하게 하고 가속화시켰다.

그것의 효과는 예측 가능한 것이다: 프랑스 역사가 브로델이 중세 시대의 유럽에 대하여 쓰면서 묘사했듯이, “ 필수 식료품 가격의 가파른 변화; 사람이 더 이상 자기 자신이나 관습, 그의 고대 가치들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불가해한 관계들” 이 나타났다. 중세 유럽의 화폐화 과정에 사로잡힌 개인은 , 다시 브로델의 말로는, “그의 일이 하나의 상품이 되고, 그 자신은 하나의 ‘사물’이 ” 되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사용했던 돈의 종류는 수가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돈이 넓게 쓰였던 사회에서는

귀금속으로 만들어진 코인이 그들의 지속성, 휴대의 간편함 , 그리고 희귀성 때문에 오래전에 다른 옵션들보다 선호되게 되었다. 돈이 가능한 여러 기능들에 쓰이기 때문에 -가치의 저장, 가치의 측도, 교환 수단, 지불 수단 어떤 경우에는 개별적 사회들은 두 개 이상의 화폐를 동시에 사용해왔다.

 

돈의 역사는 중세시대 유럽에서 은행이 생기면서 결정적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여행하는 상인들이 그들의 코인이나 금속들을 자주 강탈당했음으로 , 그들은 그들의 금속 화폐를

금장이나 은장이의 금고에 맡기고, 대신에 영수증을 갖고 다녔다.

점차적으로 이들 영수증이 그 금속 자체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게 되었다. 이 것이 최초의 종이 돈이었다. 그러는 동안 금-은장이들은 그들이 소유하지 않은 금속 코인에 대한 영수증을 발행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 관행은 결국 명령(불환) 화폐(fiat currencies)와 부분 예비금 은행(fractional reserve banking)을 발생시키게 되었다. 명령 화폐는 정부들과 전국적 은행들이 귀금속 화폐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 은행권을 발행하기 시작한 19세기 까지는 서구에서 상당한 양이 나타나지 않았다.

 

부분 예비 은행은 은행들이 그들이 예금으로(그 예금이 금이든 명령 돈이든 상관없이)

보유한 것보다 더 많은 대부를 할 수 있게 법적으로 허용된 것과 같은 시기에 하나의 시스템으로 떠올랐다. 사실상 상업은행이 대출을 할 때는 그 은행은 무에서 돈을 창조한다;

그 대출이 갚아지고 장부에서 사라지면 그 돈도 사라진다. 대출에 의하여 존재하게 되므로

현대의 화폐 경제에서의 모든 명령 화폐들은 사실상 채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채무는 이자의 지불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화폐 공급의 규제는 이자율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있고 그에 따라서 대출에 대한 수요를 증감시킨다.

 

Early Life of the US Dollar

독립 전쟁 동안에 임시 정부는 종이돈을 발행했는데 , 영국이나 다른 사기꾼들에 의해 위조되었다. 1792년의 미국 주조 령은 1794년부터 시작하여 금화와 은화를 주조하게 될 국가 주조 창을 만들도록 하였다. 그 법령은 “ 1달러는 스페인 1달러 즉 371.4 그레인의 은의 가치로 한다.”라고 정하였다.

 

미국 헌법의 기초자들은 그들의 새로운 국가가 국가 은행을 가져야 되는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 갈라져 있었다. 옹호자들은(그들 자신이 은행가이거나 또는 미래 은행가들) 국가 화폐의 적절한 규제를 위하여 국가 은행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고; 반대자들은 그러한 제도는 극소수의 은행 엘리트들에게 국가 경제의 통제권을 사실상 주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반대자들이 이겼다: 미국 헌법 제1조는 의회에게 돈을 주조할 권한을 주었다.

그러나 , Alexander Hamilton이 주도하는 국가 은행 주창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국가 화폐 외에도 다른 화폐들이 지역 은행들에 의해 발행되었다. 국가는 단일 화폐가 필요했고 국가 재정을 충당할 방법이 필요했다.

 

Hamilton주의자들은 모든 정부의 재정적 필요는 국가 은행에서 빌린 펀드에 의해 보증되고 국민의 세금에 의해 걷힌 펀드로써 되갚아야 한다고 말했다. Thomas Jefferson이 반대를 주도했다. 19세기에 두 번이나 국가 은행이 설립되고(1791,817), 두 번 폐지되었다(1811,1832 두 번 다 은행이 부패하고 위헌적이라는 이유로). 20세기 초까지 국가 은행을 설립하려는 시도들은 다 헌법적 근거 때문에 거부되었다. 정부에 의하여 통제되는 국가 화폐는 어떤 때는 명령 종이 화폐 또 어떤 때는 금이나 은에 의해 뒷받침 되었다.

사적 은행들은 그들의 은행권을 남북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계속 화폐로 발행했다. 남북 전쟁 동안에 Lincoln은 군대의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수백만 달러의 명령 “greenbacks”을 발행했다. 1878년에 의회는 greenbacks을 금으로 되사기 시작하고 이로써 미국은 1933년까지 금본위제로 복귀했다.

 

일반적으로 공화당은 금, 민중당, 민주당 그리고 “Greenback Party"는 은 많은 양의 종이돈을 찍어내는 것을 선호했다. 그들은 금이 은행가들의 수중에 집중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만일 돈이 ”진짜 사람들“의 수중에 들어가려면 정부는 더 많은 불환 또는 은에 의해 뒷받침되는 지권을 발행해야 할 것이다. 화폐 문제가 국가를 수십 년 간 분열시켰다.

분명히 돈으로서의 금은 신용의 확장에 장애물로 작동한다. 이것은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초인플레를 방해한다, 하지만 경제 활동의 발목을 잡아서 최악의 경우에 디플레와 불황으로 이끈다.

 

907년의 경기 침체 후에, 의회는 Owen-Glass 연방 준비법을 1913년에 통과시켰는데 그것은 오늘날까지도 국가 화폐를 통제하고 있는 국가 은행 카르텔을 설립했다. 연방 준비 위원회(연준위 )는 그 의장이 미국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지만 그 주식은 전적으로 그 회원은행들에 의해 소유되는 특이한 정부-민영 혼합 기관이다. 사실상 연준위는 형식적으로는 국민들을 대신하여 그것이 규제한다고 하는 바로 그 이익 단체들에 의하여 소유되고 있는 사적 법인이다. 연준위를 설립한 후에 정부는 재빨리 재무부 권을 회수하고 요구하면 금을 되살 수 있다는 약속과 함께 연준위는 연방 준비 은행권을 발행하기 시작하였다. 의회는 또한 연준위에게 국가 금의 통제권을 넘겼다.

연준은 다시 그 금을 이자를 붙여서 대출하기 시작했다.

경재를 통제하는 연준의 도구들은 몇 안 되지만 강력하다. 연준은 회원 은행들의 준비율(화폐 창조)에 대한 규칙을 정하고, 재할인율을 정한다. 연방 정부가 새로운 폭탄이나 고속도로를 만들 돈을 대출하려고 할 때는 사실상 연준에서 빌려온다(그 빚은 그 후에 통상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두루 퍼진다), 그 결과 연준은 미국의 화폐 제도만이 아니라 정부 신용도 통제한다. 연준의 심사숙고는 비밀리에 이뤄지고 한번도 회계 감사되지 않았다. 1965에서 지금까지 거의 모든 미국 화폐는 연방 준비위 은행권- 즉 정부에 의해 창조되지 않은 돈(정부는 단지 지권을 인쇄하고 인쇄 비용을 받고 연준에 판다)으로 이루어졌다.

 

The Dollar Triumphant

2차 세계대전 전 까지는 영국의 파운드 스털링이, 주로 해가지지 않는 제국에 의하여 발행되었다는 사실의 결과로 , 거의 국제 공식 화폐가 되었다.

그러나 제국도 영국 경제도 성한채로 대전을 살아남지 못했다. 전후의 경제적 지정학적 체제는 점차적으로 1944-1948년 사이에 드러났다. 1944년의 브레튼우즈 회의로 IBRD(후에 세계은행)과 IMF가 설립되었다. 브레튼 우즈 체제의 주요 특징은 각 나라들이 고정된 범위- +- 1%-내에서 자국 화폐의 환율을 유지하도록 의무 규정이었다. 이 것은 미국에 잘 들어맞았는데 미국은 당시에 가장 큰 금 보유국이었다.

미국이 세계의 단연 제1의 에너지 생산자, 재화의 수출국으로 남아 있는 한-그 것은 다시 미국이 금 보유를 유지시켰다-그 조치는 당사국들 모두에 대해 꽤 잘 작동했다. 그 당시의 미국의 정책은 자유주의에 의해 특징지어졌다:

그러나 Henry Luce가 “미국의 세기”라고 부른 것의 이 상대적으로 관대한 시기는 3가지 인자의 합류의 결과로 끝이 나게 되었다: 미국의 석유 생산의 감소, 베트남 전에 의해 야기된 치솟는 미국의 채무, 유럽과 일본의 증대하는 경제력.

1973-1999: The Petrodollar Era

"Iraq and the Hidden Euro-Dollar Wars", 라고 타이틀이 붙여진 에세이에서 Engdahl은 사건의 전개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1960년대 내내 프랑스의 드골은 수출로 번 달러를 미국 연준에 대해 금으로 바꾸어 주기를 요구했는데 이는 브레튼 우즈 체제에서는 합법적이었다. 1967년이 되자 미국과 영국 은행에서의 금의 유출이 심각한 정도가 되었다. 브레튼 우즈 급 본위제에서 약한 고리는 “유럽의 병든 사람”인 영국이었다. 1967년 스털링이 평가 절하되었을 때 그 고리는 끊어졌다 .프랑스와 다른 중앙은행들이 그들의 보유한 달러에 대해 미국의 금을 달라는 요구를 증가시키자 , 그 것은 단지 미국 달러에 대한 압력을 증가시켰다. 그들은 , 베트남 전으로 인한 적자가 치솟는 상황에서 미국은 금에 대해 달러를 절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따라서 금을 보유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계산했다.

1971년 5월이 되자 영국 은행마저도 달러에 대해 금을 요구하고 있었고 미국 금 보유에 대한 유출이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닉슨은 금 본위제를 폐지하고 그 해 8월에 변동환율제가 도입되었다.

 

다시 Engdahl에 의하면 금 본위제의 폐지는 미국의 세기에 전적으로 새로운 시기를 가져왔다. 이 새로운 시기에 통화 정책에 대한 통제는 사실상 , Citibank, Chase Manhattan이나 Barclays Bank 와 같은 국제 은행들이 금 본위제에서 중앙은행들이 맡던 역할을 금이 하나도 없이 맡음으로써 , 사유화되었다. “시장 힘들Market forces”이 지금은 달러를 결정할 수 있고 , 대가가 뒤따랐다.

1973년에 달러가 자유롭게 변동할 때에 OPEC은 야마단 전쟁에서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지한 것에 대한 복수로 미국에 대한 석유 수출을 금지시켰다. 그 당시에는 미국 석유 생산이 피크에 달했고 영구적 하락세에 들어섰고 미국은 석유 수입에 더욱 더 의존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명백해졌다. 유가가 400% 올랐고 미국 경제는 코 밑까지 물에 잠겼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는 1945년에 합작 관계를 맺었는데, 미국의 석유 회사들(Exxon, Mobil, Chevron, and Texaco) 은 사우디와의 합작 회사인 사우디아라비아 석유회사the Saudi Arabian Oil Company (Aramco)를 통해서 이미 사우디의 석유 탐사와 생산을 통제하고 있었다. 1973년에 사우디 정부는 Aramco의 지분을 25%, 다음 해에 60%로 올렸다. 1980년에 사우디 정부는 Aramco의 지분을 100% 소유하게 되었다.

 

이것이 일어나고 있던 것과 같은 시기에(1975), 사우디는 그들의 석유를 미국 달러로만 수출하기로 동의했다. 금방 OPEC국가들 전부가 같은 방식을 채택했다. 지금은 그 결과 달러가 금에 의해 보증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석유에 의해서 보증되고 있다. 아무튼 석유 쇼크는 변동하는 달러에 대한 수요를 엄청나게 증가시켰다. 독일과 일본을 포함한 석유 수입 국가들은 그들의 솟아오르는 화석 연료 대금을 갚을 수 있는 달러를 어떻게 벌든지 빌려 올까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 사이 OPEC 산유국들은 석유달러로 넘치게 되었다 . 이들 오일 달러들 중 많은 양이 런던이나 뉴욕의 은행들의 창구에 종착하게 되었는데 , 거기에서 새로운 과정-Henry Kissinger가 “recycling petrodollars”라고 부른-이 제도화되었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이 작동했다.OPEC 국가들은 그들이 당장은 쓸 수 없는 수억 달러를 받고 있었다. 미국과 영국의 은행들이 이 달러들을 예금으로 받았을 때 , 그들은 더 많은 대출을 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산업화된 국가들의 경제는 많은 새로운 빚을 떠안을 위치에 있지 않았음으로 은행들은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누구에게 그 많은 석유달러 돈을 대출해줄 수 있나? Kissinger는 Chase Manhattan Bank의 David Rockefeller의 조언자였는데 석유 수입을 지불할 달러를 빌기 위해 필사적이던 제3세계 국가들에게 공격적으로 채권이나 대출을 “팔” 수 있는 지불 준비금으로 OPEC 달러를 사용할 것을 은행들에게 제안했다.

 

1970년대 말기에 이들 석유달러 채무는 1980년대에( 이자율이 폭발한 후에) 제3세계 외채 위기의 기초가 되었다. 수천억 달러가 이런 식으로 재순환 되었다(우연찮게도 빌려온 돈들은 결국 다시 서구 기업이나 은행으로 되돌아갔다. 서방 건설 회사와의 계약 또는 해당 국가 관리들의 도둑질로) 또한 1970년대와 1980년대 동안에 사우디는 석유 달러 잉여로 미국 무기 제조업자들로부터 거대한 양의 중고 무기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미국 경제 특히 소위 국방부에 대한 숨겨진 보조였다.

Engdahl이 지적하듯이 석유달러 시대는 달러를 패권적 통화로 만듦으로써 자신의 지정학적 쇠퇴(해외에 대한 과도한 간섭과 국내의 자원고갈에서 발생하는)를 늦추려는 미국의 시도에 의하여 특징 지워 진다. The IMF "Washington Consensus"는 제3세계 국가들에게서 가혹 채무회수를 강요하기 위해서, 남쪽 국가들의 경제적 독립을 방해하기 위하여 그리고 미국은행들과 달러를 띄우기 위해 개발되었다. Trilateral Commission은 산업거인으로서의 일본의 최근의 부상을 염두에 두고 일본을 시스템내로 끌어들이려는 목적으로 David Rockefeller등에 의하여 1973년에 창조되었다.

 

일본은 주요 산업국가로서 석유의 주요 수입국이었다. 자동차나 다른 재화의 수출로 번 일본의 잉여는 석유룰 달러로 사는데 쓰였다. 나머지는 미국 재무부 채권에 투자되었다, G-7은 일본과 서구를 미국 달러 시스템 안에 묶어두기 위해 창립되었다. 때때로 1980년대까지

일본 내의 여러 목소리들이 3개 통화-달러, 독일 마르크, 일본 엔-가 세계 기축 통화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고 했지만 , 그런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았다.

달러는 여전히 지배적이다. 동시에 , 1980년대에 미국은 치솟는 미국과의 군비 경쟁과 미국에 의해 조장된 아프간 전쟁에 돈을 대기 위하여 석유를 더 퍼내도록 소련을 강요함으로써, 사우디더러 유가를 낮게 유지하기 위해 증산하라고 요청함으로써, 소련의 석유 수입을 축소시킴으로써 효과적으로 소련을 파산시켰다. CIA에 의해 예견된 바와 같이 소련의 석유 생산은 피크를 이르고 그 후에 감소함에 따라 소련의 경제는 붕괴되었다.

 

 

1999-Present: Hegemonic Decline, Imperial Hubris

냉전이 끝나자 유럽은 정치적 경제적 일원화 과정에 있었다. 오늘날 EU와 유로는 미국의 화폐 패권에 미묘하지만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 이 도전은 지난 15년간 느리게 발전해왔지만 그 효과는 급속히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제레미 리프킨이 그의 새 책(유러피언 드림, 민음사)에서 기록하듯이, 유럽은 싸움박질 해대는 국가들의 집합이 아니라 결속된 경제 슈퍼파우어- 미국을 GDP, 인구, 생산성에서 능가하는 수퍼 파우어가 되어 가고 있다.

유럽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고갈되어 가는 외국의 석유와 가스에 의존하고 있고 지구적 기후 변화에 의해 호되게 타격을 입을 것이다. 그래서 장기적으로는 유럽의 전망은 어둡다-다른 나라들보다 더 어두운 것은 아니지만 .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유럽은 미국에 대해 훨 씬 더 높은 에너지 효율성(유럽인은 미국인에 비해 1인당 에너지 사용이 반 정도이다)과 훨씬 더 적은 빚(부분적으로는 훨씬 더 적은 군비에서 결과한다)을 포함하는 몇 개의 유리함이 있다.더구나 유럽은 여전히 상당한 양의 수출 가능한 석유와 가스 그리고 핵무기와 재래식 무기를 무더기로 갖고 있는 러시아에 인접해 있다. 러시아, 독일 그리고 프랑스의 유라시아 동맹은 미국에게는 악몽이 될 것이다-그리고 그런 동맹이 조용히 시험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하고 있다. 유럽은 또한 지형적으로 중동과 중앙아시아의 석유와 가스 지대에 더 가깝다.

 

이 유라시아의 도전은 미국에게는 안 좋은 시점에 오고 있다. 미국은 G-7의 결속을 유지하기 위해 수십 년간 해왔던 여러 종류의 무역 양보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미국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강점은 군사력이고 그러므로 미국의 유일한 옵션은 유일 초강국으로의 지위에서 품위 있게 추락하든지 군사력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다. Engdahl은 네오콘들이 워싱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이유는 미국의 권력 집단U.S. power establishment의 다수가 그들 네오콘의 견해가 세계에서의 미국의 공격적 역할을 더 용이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럽과 합의점을 찾으려 노력하기 보다는 워싱턴은 점점 더 유럽을 특히 독일과 프랑스의 “늙은 유럽”을 미국 헤게모니에 대한 위협으로 보고 있다. 몰락 중의 영국이 1870 이후에 점점 더 남아프리카와 다른 곳에서 필사적인 제국주의 전쟁에 의존했듯이 미국은 더 이상 경제적 수단에 의해 성취될 수 없는 것을 군사력을 써서 성취하려고 하고 있다. 여기에 달러가 아킬레스건이다.

 

왜 달러가 미국의 아킬레스건인지 이해하기 위해서 은유가 유용하다. 수표를 써서 그 수표를 받는 사람들에게 그 수표들을 현금화하지 않아도 된다고 확신시켜 줄 수 있다고 생각해 보라. 아마도 그들은 그 수표들이 갖고 있기에 편리하다고 느낄 수 도 있고 : 당신 수표에 대해서만 식료품이나 가솔린을 팔기로 동의하고 그것들을 다시 재순환시키는 당신 친구가 있을 수도 있다. 어째든 당신은 은행구좌에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수표를 발행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것이다. 수표들 자체가 가치가 있다고 간주되고 현금화되지 않는한 당신은 무임승차한다. 그러나 당신 친구가 다른 사람의 수표에 대해 또는 금이나 은에 대해 식료품을 팔기 시작하면 게임은 끝난다. 당신 구좌가 과다 인출되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당신은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다.

사실상 모든 나라가 한도 이상으로 수표를 발행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이 일을 더 잘 해올 수 있었다. 우리가 말하고 있는 수표는 단지 축적된 종이 달러만이 아니라 달러로 표기된 투자들과 T-bills, stocks, 그리고 모기지들을 포함하는 채권들이다. 현재 미국은 수조 $의 정부 채무와 수조$의 소비자 채무 위에다 매년 7000억$의 무역 적자를 내고 있다.

 

미국 달러로부터 줄행랑이 일어나게 되면 , 그러면 가능한 유일한 재정적 해결책은 (아마 정부 빌리기를 통하여) 더 많은 달러를 창조하는 것이고 이는 당연히 문제를 실제로 해결하는 것은 아니고 장기적으로는 사태를 악화시킬 것이다. 달러는 거의 쓸모없게 되고 그 과정에서 실제 부(땅, 공장들, 자연 자원들)는 징발되고 채권자들에게 양도될 것이다.

무엇이 이런 사태를 야기 시킬까? 석유를 유로로 팔겠다는 OPEC의 결정이 방아쇠가 될 것이다. 어떤 석유들은 이미 조용히 유로로 팔리고 있고, 이란과 사우디를 비롯한 여러 국가들이 석유를 여러 통화들(사실상 달러와 유로를 의미한다)에 대해 가격을 매길 가능성을 내비추었다. OPEC 국가들은 또한 브뤼셀과 워싱턴에 걱정이 될 생각을 저울질 하고 있다;

석유를 금(금 디나르)에 팔려는 생각 . 그러면 미국이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

 

다른 촉발 점은 모기지 거품의 터지는 결과 미국 경제가 안에서 붕괴하는 것이다. 최근의 미국의 경제 “회복”은 거의 전적으로 낮은 모기지 이자율(궁극적으로는 연준에 의해 정해진 )에 의해 일어났는데, 이는 그들의 집을 살수 있게 해주었고, 주식을 현금화해서 그 돈을 직접적 소비에 사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유가가 치솟으면 연준은 인플레를 잡기 위해 종국적으로 이자율을 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수백만 주택소유자들로 하여금 변동 이자율의 모기지 채무 불이행을 야기할 것이다. 그 경우 주택가격은 폭락할 것이고

그들과 같이 주식 시장과 경제 전체가 동반 추락할 것이다.

무엇이 이런 일을 일어나게 할 수 있을까? 공개적으로 석유를 유로로 팔겠다는 OPEC의 결정이 방아쇠가 될 것이다. 어떤 석유들은 이미 유로로 팔리고 있고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하는 여러 나라가 석유를 한 바구니의 통화들(실제는 달러와 유로)에 대해서 가치를 매길 가능성을 띄어 올렸다. 아랍 OPEC 국가들은 또한 브뤼셀과 워싱턴 모두에게 걱정스러운 생각을 저울질 하고 있다: 석유를 금으로 파는 것(금 dinar-새롭게 탄생될 금화의 단위). 만일 이것이 일어나면 분노한 미국이 중동을 가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그리고 그것이 그런 일이 아직까지 일어나지 않은 이유이다.

 

다른 가능성 있는 방아쇠는 모기기 거품이 꺼지면서 미국 경제가 안에서 붕괴하는 것이다.

최근의 미국 경제의 “회복”은 거의 전적으로 낮은 모기지 이자율(궁극적으로는 연준에 의하여 정해진) 일어났는데, 그것으로 가족들은 그들의 집을 재 금융하고 그들의 주식을 현금화 하고 그 돈을 즉각적 소비에 사용할 수 있었다.

유가가 치솟으면 연준은 결국은 인플레를 잡기 위해 이자율을 급상승시켜야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수백만의 주택소유자들로 하여금 현재의 저이자율의 변돈 금리 모기지에 대해 채무 불이행하게 만들 것이다. 그 경우에, 자산 가치는 급락하고 주식 시장도 동반 추락하면서 경제 전체가 추락하게 될 것이다.

어떤 경우가 발생하든, 미국 정치 지도자들의 반응은 외국 희생양을 찾는 것이 될 가능성이 있다. 만일 이란이 중동에서의 네오콘의 민주주의를 위한 십자군 전쟁의 다음 도미노로 지정된 것처럼 보인다. 이란과 러시아의 에너지 협력 합의가 만개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면 도 다른 세계적 규모의 전면적으로 치닫는 방아쇠가 될지 모른다.

다른 한편 . 이라크에서의 경험으로 워싱턴 엘리트들이 비슷한 모험을 감행하지 않을 수도 있다.

 

 

 

'[펌]글 > 프리메이슨'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계몽주의  (0) 2010.10.28
뉴 에이지... 반기독교운동  (0) 2010.10.28
유대자본  (0) 2010.10.28
부분지급준비율  (0) 2010.10.28
한국로터리클럽 ..라이온스클럽  (0) 2010.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