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H.A. Giroux, 1943~)
1. 생애
헨리 지루는 1943년 9월 18일에 로드섬에서 캐나다 노동 이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1960년대에 투쟁참여, 공동체 조직활동, 1968~1975년까지 로드섬의 배링턴에서 고등학교 교사 생활로 채워져 있다. 그의 비판적 목소리는 어린시절 로드 아일랜드에서 노동계급 이웃들과 함께 저항하고 투쟁하면서 나온 분노와 용기를 실천으로 옮긴 까닭이다. 빈민가인 스미스 힐을 떠나 대학 강단으로 가게 된 건 농구 특기생으로 받은 장학금 때문이었으며 장학금이 아니었다면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어린시절 그는 계급 차이를 생생하게 깨달았고, 그 이후로는 학교 교육이 사회적으로 혜택 받은 사람에게만 권력을 주는 방식을 간파하고자 끝없이 투쟁을 벌였다. 1970년대 말, 사회계급과 학교 교육에 관해 지루가 에세이를 썼을 때 윌리엄 파이너, 진 애니언, 마이클 애플 등이 함께 하였다. 이들은 정치경제학의 언어와 사회재생산이라는 환원론적 개념을 사용해 학교 교육에 대한 분석을 내놓았다. 그는 1977년에 피츠버그에 카네기 메론 대학으로부터 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1977년에서 1983년까지 그는 보스톤 대학에서 교수로 있었다. 1983년에 그는 마이에미의 옥스퍼드대학에서 있었고 교육과 문화에 대한 센터의 담당자로 일했다. Peter McLaren, Joe Kincheloe and Shirely Steinberg와 함께 지루는 교육연구에 문화 연구를 접목시키는데 앞장섰다. 우리가 신문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라디오를 들을 때 어디에서나 교육은 중요한 것이다. 우리 사회의 관심은 교육과 함께하기 때문에 모든 학회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올바른 지식을 가르쳐야 하는 책임이 있다. 그러나 교사는 사회에 길들여져서 일을 하지 않는다. 헨리 지루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도를 통해서 이 문제를 간결하게 결론지은 많은 학자들 중 하나이다. 지루의 이론적 관심은 이탈리아 이론가 안토니오 그람시와 브라질 교육자 파울로 프레이리 그리고 프랑크 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에게로 옮겨갔다. 그가 정통 마르크스주의 담론은 문화, 권력, 이데올로기가 지배집단과 종속집단 사이의 위계적 분열을 조장한다는 점은 잘 분석하고 있지만, 학생이 주체적일 수 있게 하는 상호 유익한 지배장치라는 점에서 전혀 비판적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을 때 프레이리와 그람시의 연구는 지루에게 새로운 길을 안내했다.
정치, 사회, 교육,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많은 논문과 저서를 발표하여,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문화비평가 중의 한 사람으로 불린다. 그의 저서 <교육 이론과 저항>은 우리나라에 소개된 적이 있고, 교육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비판교육자 혹은 저항이론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현재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 교육대학의 워터버리 석좌교수로 있다.
1. 철학사상
1) 갈등주의 교육사회학적 사상.
기본가정은 모든 사회는 긴장, 변화, 마찰의 연속이고, 사회의 구성요소는 상호 대립적이고 갈등적이다. 모든 사회는 자본가집단이고, 노동자 집단이며, 억압하고 강제하기 위해 성립한다. 현재 사회를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교육과 학교도 부정적으로 본다. 사회의 구성요소를 상호 대립적 계급으로 보며 사회 불평등은 희소한 자원의 분배를 독점하기 위해서 지배계급이 심화시킨다. 사회는 부모의 지위에 의해 자식들의 지위가 결정되는 후원적 사회이다. 교육 (학교)은 자본주의의 불평등한 경제적 구조를 재생산한다. 학교를 통한 계층 상승이동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사회실체론을 신봉하여 사회의 존재를 인정하였다.
2) 해방적 프락시스
적극적인 삶 속에 "참여"(participation)를 통한 정치지향적 성격을 지닌 교육내용을 선정선정하였는데, 이러한 해방적 프락시스의 차원은 전통적 교육과정에서 오랫동안 간과하거나 의도적으로 숨겨왔던 교육내용이다. 왜냐하면 학습자의 적극적인 정치적 참여는 현상유지(status quo)를 지향하는 기득권 세력에게는 자신의 권력에 대한 하나의 위험으로 간주되었고, 더 나아가 사회체제의 전복을 꾀하는 불순 세력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방신학과 해방교육론이 적절하게 지적한 것처럼, 그러한 기득권층의 현상유지적 의도는 비판적 성찰의 작업에 의하여 폭로되어야 하며, 더 나아가 그러한 작업을 통해 인간해방을 지향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해방적 프락시스 차원의 교육과정 내용은 일종의 갈등론적 잠재적 교육과정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루(Giroux)의 신중심적 프락시스 접근은 공교육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이데올로기의 분석과 지배적인 권력구조를 비판함으로써 해방을 지향하는 교육과정의 내용을 선정하는 것이다.
지루(Giroux)는 잠재적 교육과정에 대한 논의를 통해, 잠재적 교육과정을 "학교와 교실생활의 사회적 관계 뿐만 아니라 공식적인 교육내용의 중요한 의미구조를 통하여 학생들에게 전수되는 진술되지 않은 규범, 가치, 신념"이라고 정의하면서, 학교의 기능을 재구성하고자 하였다. 그에 의하면 학교는 단순히 사회와의 관계 하에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한다거나 혹은 사회적인 불평등을 재생산하는데 이용되는 차원을 넘어 여러 다른 사회집단들이 제공하는 문화, 지식, 권력의 복합체를 수용하기도 하고 또 거부도 하는 "상대적 자율성"(relative autonomy)을 지닌 기관이라고 강조하였다. 다시말해 지루는 잠재적 교육과정과 관계하여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을 결정하는 사회정치적 의미가 무엇인가를 밝혀내고 비판해야 할 뿐만 아니라, 교사와 학생이 사회구조적으로 가해지고 있는 제약 속에서도 "협상"(negotiation)하고 또 "저항"(resistance)하면서 의미를 구성하고 변형시키고자 노력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지루의 주장은 상대적인 자율성을 지닌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이 함께 협상과 저항의 과정을 통해 공식 교육과정의 내용을 재구성함으로써 해방지향적인 교육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기독교 교육의 측면에서 지루의 이같은 주장은 교단보다는 개교회의 자율성을, 그리고 교사와 학생을 비롯한 교육주체들 사이의 협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기독교 교육과정은 교사와 학생이 함께 협상과 저항의 과정을 통해 합의된 지식을 선정하고 분배함으로써 해방적 프락시스 내용을 갖게 되는 것이다.
3. 교육관련 내용
1) 새로운 교육과정의 사회학
Giroux는 교육과정 분야가 이론, 지식, 과학 등의 본질에 대해 상당히 불완전한 가정을 지닌 사유양식에 의해 지배되어 왔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전통적'인 교육과정 모형은 학교와 보다 큰 사회질서 사이의 관계 뿐 아니라, 교육과정 설계와 평가의 이데올로기적 가정(underpinning)에 관해 근본적인 의문을 인식하거나 제기해 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교육과정 이론화와 실제에 대한 이러한 전통적 접근방식의 실패에 맞서면서 상당수의 교육과정 이론가들은 교육과정 분야의 지배적인 접근방식과 관련된 몇몇 기본 가정들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Giroux는 이러한 비판가들을 '새로운 교육과정의 사회학'이라는 범주 아래 산만하게(loosely) 결속시키고 있다. 그는 이 새로운 교육과정의 사회학이 교육자들에게 보다 유연하고 인간적인 형태의 교육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할 것으로 믿고 있다.
새로운 교육과정 사회학의 비판가들은 자신들의 과제가 개념적 혼란상태(muddle)로 부르는 것을 명료화하는 것 뿐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첫째, 전통적 교육과정 패러다임의 근저에 있는 개념들은 행위 지침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둘째, 이 개념들은 도덕성의 기준에 관한 가치판단이나 자유와 통제의 본질에 관한 문제와 불가피하게 관련되어 있다.
새로운 교육과정의 사회학은 전통적인 교육과정 패러다임 속에 포함되어 있는 기본 가정들을 교육과정에 관한 새로운 지향점(orientations)과 논의의 방법을 개발하기 위하여 극복해야 할 제한된 상황과 비판의 대상으로 간주한다. 이 가정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들을 구체화시키는 일이 필요하다.
① 교육과정 분야의 이론은 경험적으로 검증될 수 있는 법칙적 명제(lawlike propositions)를 위하여 적용해야 한다.
② 자연과학은 교육과정 이론, 설계, 평가의 개념과 기법에 대한 적절한 설명모형을 제공한다.
③ 지식은 객관적이어야 하며 중립적인 관점에서 탐구되고 기술되어야 한다.
④ 가치 진술은 객관적이어야 하는 '사실'이나 '탐구양식'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새로운 교육과정 사회학 비판가들은 전통적 교육과정 모형이 이론, 지식, 과학의 본질과 역할에 관한 일련의 불완전한 가정에 의존하고 있다고 논박한다. 또한 이 가정들은 의미와 사회통제 뿐 아니라 학교지식과 이데올로기의 보다 큰 관계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를 무시한 편협한 탐구양식을 초래하였다고 주장한다.
2) 전통적 교육과정 모형의 결점 밝힘
전통적 교육과정은 탈역사적(ahistorical)이고 합의지향적이며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합리성의 관점에 확고한 일체감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수동적인 학습관을 지지하며, 편협한 조작적 사유양식과 자신을 결합시켜 주는 이데올로기적 가정들을 검증해 낼 수 없다. 또한 과학적 공동체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요소들과 준거틀(frames of reference)을 소홀히 한다.
전통적인 교육과정 모형은 비판적 반성과 인간 이해를 증진시키는 대신, 확률의 논리를 진리와 의미의 궁극적인 결정요인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모형을 특징짓는 개념들은 비판적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현상유지를 지지하는 백지수표(blank check)와도 같은 것이다.
3) 강조점
새로운 교육과정의 사회학은 전통적 교육과정을 특징짓는 뿌리깊은 신념과 가정에 대하여 중대한 도전을 전개해 왔다. 그러한 도전은 단일한 형태가 아닌, 실존주의, 정신분석학, 마르크스주의, 현상학과 같은 다양한 현대철학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이질적인 형태의 용어나 사고로 보이는 것을 사용한다 해서 이 비평가들을 무시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다. 진정으로 관심을 두어야 하는 점은 과연 사용되는 용어나 개념들이 교육과정 분야에 관해 대단히 중요한 의문이나 문제점 등을 제기하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새로운 교육과정의 사회학은 학교란 보다 큰 사회적 과정의 부분으로서, 구체적인 사회 경제적 틀 내에서 판단되어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또한 교육과정 그 자체는 보다 큰 문화로부터 선택된 것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비판가들은 교육과정, 학교, 사회 간의 관계를 철저하게 재검토할 것을 주장한다. 그 강조점은 첫째, 어떻게 학교가 잠재적 공식적 교육과정을 통하여 보다 큰 사회질서의 문화적 신념과 경제적 관계를 재생산하는지를 밝힌다. 둘째, 일상적인 교실 관계의 구조(texture)가 어떻게 다양한 의미, 제약, 문화적 가치, 사회적 관계를 발생시키는지에 모아진다.
비판가들은 교육과정의 설계, 연구, 평가작용을 지배하는 원리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이 교육과정 전문가나 교사에 의하여 무시되어 왔다는 견해를 지지한다. 의미에 관해 이와 같은 제한된 관점에서는 편견이나 사회적 신화 등이 인간의 성향이나 생활양식 등 의문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영역 속으로 통합되어 버린다.
이런 행동양식 내에서 학생들이 스스로의 의미를 생성하고, 자신만의 고유한 체험에 따라 행위하고, 비판적 사고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개발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한 상황 아래 전개되는 학습은 의미를 계발하기보다는 의미를 강제하는 통제형식의 미사여구(euphemism)로 전락한다. 교사들이 교육과정과 교수법에 관련된 스스로의 기본 가정들을 일괄해서 다루어버린다면, 현존하는 제도적 억압의 형태를 오히려 강화시키고, 인지적 인성적 촉진형태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인정하는 결과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과정 연구자들이 예언, 통제, 효율성 따위가 아닌 지식에 내재된 근본적 이해관계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단순한 오해의 문제가 아니라 심각한 윤리적 정치적 오류의 문제이다.
지루는 그들은 불공정한 사회 위계 질서가 지속되는 것과 집단적인 불평등이 모두 교육 내용과 연합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다.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은 중간 계층이나 노동자 계층을 통제하는 지위를 유지하게 된다. 그들 중간 계층이나 노동자 계층은 가난하고 빈곤한 자들과 함께 자신의 삶을 스스로 지배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능력을 발전시키거나 개발시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런 반론도 없이 문화적 재생산이 부과된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다. 억압받은 사람들은 저항할 길을 찾고 있다. 그러나 교육자들이 학교는 사회적 혹은 문화적 변화에 영향을 미칠 힘이 없다는 것을 묵시적으로 가정할 때, 그들은 현재의 불의를 영속시키는 것이 된다. 문제는 학교가 단독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내에 있는 수많은 제도 중 하나로서의 학교가 더 많은 자유, 평등, 정의를 위해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있는 것이다.
권력, 지식, 이데올로기, 학교교육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복잡한 형태로 서로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상호관련성에 일정한 형태를 제공해 주는 구조는 본질상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며 역사의 산물이자 과정이다. 교육과정 이론가, 교사, 학생들은 모두 교육적 경험을 지각하고 구조화함에 있어서 자신들에게 강하게 영향을 주고 있는 특정 신념과 실제, 개념과 규범을 내면화하고 있는 셈이다. 교육과정 모형은 사회적 의미가 표방하는 진리에 대한 주장을 판단할 수 있도록, 사회적 의미(parameters)에 대한 설명을 보다 큰 사회적 상황의 특성에 관련시켜 주는 이해의 양식을 개발해야 한다.
4)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입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을 교육이론 이나 실천에 도입하는 문제에 반영시키고자 하였다. 지루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유토피아적 인본주의 측면에 비중을 둔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유토피아적 인본주의가 본질적으로 근대적 인본주의와 같은 맥락이라 전재 아래, 20세기 후반 사회문화 변화에 무기력해진 계몽적 근대교육학을 발전시킨다는 차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교육학적으로 전개하는 형태의 것이다. 비판적 교육학을 주창하는 학자들은 계급문제에서 주변적인 것으로 무시되던 문제로 관심영역을 확대하는 학문적 경계이동의 형태로 합리적 세계를 추구하는 새 차원의 비판 교육설인 포스트모던 교육학을 제안한다.
5) 저항이론 : 탈재생산이론
저항이론은 학생들은 수동적으로 학교가 제시하는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문화에 기초해 적극적으로 학교문화에 저항하고 반학교문화를 형성하면서, 능동적으로 노동자가 되어간다는 관점을 설명하고 있다.
① 재생산이론은 인간의 자율성을 무시하고 과잉 사회화 모델을 따르고 있다. 인간은 의미를 구성하고 상황을 정의할 수 있는 능동적인 존재들이다. 재생산론 속의 인간들은 그러한 능동성을 결여되어 있다.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들이 비록 자신의 존재조건에 적합하지 않고 이해관심에 배치된 것일지라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동적 존재이다. 재생산론에 나오는 인간의 모습이란 자유의지가 없고, 선택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다.
② 따라서 저항이론에서는 재생산론에서 나타났던 학생들의 수동성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저항이론에서의 학생들은 교육과정의 의미를 파악하고 공유하며, 자신들의 생활조건을 통제하고 변혁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들임을 부각시켜주었다.
③ 학교교육이 자본주의 체제의 질서를 확인해 주는 도구적 장치라는 재생산론은 학교교육의 특성을 구조적 측면에서 해석함으로써 학교교육의 역할을 축소시키는 경향이 보였다. 학교교육은 지배체제에 의하여 성격이 규정되어지며, 학교내부 현장은 사회구조의 반영물에 지나지 않는다.
④ 결국 학교에서 배우는 사람들도 사회구조의 영향력에 따라 그 모습이 형성되는 수동적인 존재에 불과하다. 학교가 사회계급구조의 반영물이라면, 학교교육을 통해 사회모순을 개혁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득력을 잃게 되며, 아울러 교육의 근본적 성격을 재고하여야 한다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저항이론은 이러한 문제점에 반응하고 있다.
⑤ 저항이론은 학교교육이 사회계급구조의 불평등을 그대로 보존하거나, 이행하는 단순한 반영물이 아니라 오히려 학교교육을 통해 사회모순과 불평등에 도전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하고 있다. 저항 이론에서의 인간은 사회구조가 요구하는 대로 그 성격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에 저항․도전․비판하는 능동적인 존재이다.
⑥ 즉, 인간은 사회구조의 영향을 받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주체적 의지를 지닌 능동적 존재로서 사회모순에 투쟁․비판․거부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즉, 인간은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인식할 수 있으며, 이 구조를 개혁할 수 있는 의지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⑦ 저항이론은 학교에서의 학생들의 반대행동을 기존의 제도 교육과 사회질서에 대한 저항으로 파악하여 이론화한 것이다. 재생산이론이 인간이 지배이데올로기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면서 재생산과정이 이루어진다고 보는 데 반해, 저항이론은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해 능동적으로 저항문화를 형성하며 저항하는 과정에서 사회의 재생산이 진행된다고 본다.
6) 비판적 언어
비판적 교육자인 지루(Henry Giroux)는 "비판적 언어"와 동시에 "가능성의 언어"를 발전 시켜야 한다고 했다. 즉 현 사회에 대한 민중 세력들이 어느 정도 민주교육이념과 학교 지식의 민주화를 확보할 수 있는지, 그 결과 학교 안에서 어느 정도로 민주역량을 축적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분석을 바탕으로 민중세력의 힘과 지식(교육) 사이의 부정적 관계와 긍정적 관계를 명확히 인식하여 민중을 조직화 할 수 있는 정치적, 교육적 프로그램을 개발 할 수 있는 것이다.
4. 저서
‘교사는 지성인이다’ - 현재는 교사를 비난하는 사람들과 교사들이 함께 대중적인 토론을 벌일 수 있는 도전의 기회이며, 교사양성과 현직교사 프로그램, 일반적인 교실 수업의 성격과 목적에 절실히 필요한 자기비판의 기회이기도 하다. 이러한 토론을 통해 교사들은 근무조건 개선을 위해 집단으로 뭉칠 기회를 얻을 수 있으며, 공교육을 개혁하는 중요한 시기에 반드시 교사가 중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을 대중들에게 증명할 기회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헨리 지루는 현재의 교육담론을 이해하고 발전시키는 데 토대가 되는 경향들을 다루고 있다.
‘디즈니의 순수함과 거짓말’ - 미국 우월주의와 경박한 소비주의를 조장하는 디즈니랜드와, 백인 중상류층의 뒤틀린 꿈을 실현시켜주는 축하마을, 교육이라는 가면 뒤에서 벌어지는 그들의 치졸한 경영 행태 등이 모두 비판의 대상이 된다' 올바른 교육'이란 단순히 특정한 주제를 가르칠 때 사용하는 전략이나 기술을 의미하지 않는다. 비판적 본질을 가지는 교육이란 '지식과 권위와 권력의 관계를 조명해주는 것', 즉 "어떤 지식이 가장 가치 있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며, 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라는 문제제기의 산물이다. 이런 비판적인 교육의 한 부분으로서 디즈니는 끊임없이 담론의 도마에 올라야 하고, 경계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디즈니는 단순히 오락만을 파는 것이 아니라, 명백한 정치적. 경제적. 교육적 실체로서 작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거대 미디어업체가 행사하는 부정적인 영향력을 폭로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부문에 걸친 전면적인 저항이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교육이론과 저항’
사회이론의 새로운 관점에 대한 저술을 하고 있고 이데올로기적, 지적, 정치적 국면을 제시한다. 재생산이론의 학교의 목적과 저항, 적응, 그리고 저항과 비판적 교육학에 대한 것이 서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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